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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만 있는 요즘 드라마 … ‘이야기’ 는 어디 갔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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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만 있는 요즘 드라마 … ‘이야기’ 는 어디 갔나
[중앙일보] 드라마 시청이 극기훈련의 장이 될 수는 없다. 볼거리가 화려해도 줄거리가 빈약하면 사람들은 한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스타를 캐스팅해도 드라마가 성공하지 못하는 까닭을 아는가. 팬클럽은 열혈 시청자지만 시청자는 스타의 팬클럽이 아니다.
광고는 15초로 족하지만 드라마는 한 시간 넘게 보아야 한다. 비록 처음 한 시간은 참아준다 해도 다음 번엔 줄줄이 채널을 돌리기 십상이다. CF스타의 드라마 복귀가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쉬는 시간 틈틈이 연기력을 쌓고 대본 고르는 안목을 익혀야 시청자를 오래 만날 수 있다.
라디오 드라마가 최고 인기였던 시절 사람들은 눈앞의 초라한 현실에 눈을 감고 만들어진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라디오 연속극은 사람들을 조선시대 궁궐로 몰아가기도 하고 로마·라스베이거스로 데려가기도 했다.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죽이려는 순간에 전국의 청취자는 함께 분노했고 작가와 성우와 연출가는 뒤에서 함께 기뻐했다.
드라마는 대중예술이고, 예술의 기본은 문학·음악·미술이다. TV는 그림이 있는 라디오다. 음악과 미술의 진화에 환호하면서 정작 문학의 발달에 대해선 소홀한 게 화근이었다. 그림은 엄청 요란해졌는데 들어줄 만한 이야기가 사뭇 초라한 게 TV의 현주소다. 연기력과 관계없이 스타는 널려 있고 여기저기서 계속 꿈틀대는 데 반해 걸출한 작가는 극소수이고 그나마 ‘가뭄에 콩 나기’식으로 배출된다.
시청자는 보고(視) 듣는(聽) 사람이다. 눈은 즐거운 데 귀가 갑갑하니 만족이 마음에 이르지 못한다. 듣고만 있어도 푹 빠져드는 이야기에 그들은 목말라 있다. 분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것이 대하사극일지라도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이야기를 꾸미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더 필요하다. 귀 기울일 만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역량을 갖춘 작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드라마 ‘왕과 나’의 촬영현장에 연기자의 남편이 나타나 울분을 터트렸다. 그 역시 유명한 연기자다. 그는 매번 늦게 나오는 대본 때문에 아내가 불안해하는 게 마음 아팠고 급기야 인내심의 한계를 넘겨 폭력을 휘둘렀다. 작가를 만나면 때려주고 싶다는 말을 나 또한 연기자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 사건의 작은 주제는 남편의 아내 사랑, 인격수양, 대화의 중요성 등등이지만 큰 주제는 사전 제작과 작가 양성의 필요성이다. ‘꿈의 공장’인 방송사는 스타를 불러 모으는 데만 급급해하지 말고 스토리를 생산하는 작가를 육성하는 데 지금 당장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 속담이 있다. 고운 꽃도 향기가 없으면 금방 싫증이 난다. 이야기 구조가 부실한 드라마는 향기 없는 꽃들을 모아놓은 인조 정원에 불과하다. 작가는 말과 상상력으로 꽃을 피우는 사람이다. 유능한 작가를 공들여 키워야 한다. 화가 난 남편들이 언제 꽃밭(촬영장)에 나타나 가위를 휘두를지 모르는 일이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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